보이드덱 장례식 치르는 풍경
싱가포르 HDB 단지를 지나다 보면 1층 공터에 천막과 테이블이 설치되고, 향을 피우거나 조문객이 오가는 모습을 마주칠 때가 있다. 이곳은 “보이드덱(void deck)”이라 불리는 공간이고, 결혼식만큼이나 장례식(웨이크)이 자주 치러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보이드덱이란 무엇인가
HDB 아파트는 대부분 1층을 아예 비워두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이 비어 있는 1층 공간이 보이드덱인데, 아파트 거주자들은 생일 파티, 결혼식, 장례식 등의 목적으로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처음부터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을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계획된 셈이다.
왜 여기서 장례를 치르나
보이드덱 장례는 싱가포르에서 가장 흔하고 저렴한 방식으로, 대부분의 타운카운슬이 공간 사용료를 면제해주고 전기·수도 요금 정도만 부과한다. 별도의 장례식장을 빌리는 것보다 비용 부담이 훨씬 적고, 무엇보다 고인이 살던 동네에서 이웃들과 가까운 곳에서 조문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이웃과 지인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 어려운 시기에 공동체의 지지를 받기 쉽다는 점도 이 방식이 오래 유지된 이유다.
신청 절차
아무나 원한다고 보이드덱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타운카운슬은 고인 본인이나 직계가족(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이 해당 블록이나 인근 주민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둔다. 실제로는 장례지도사가 타운카운슬에 연락해 공간 예약과 사망진단서, 신분증 확인 등의 절차를 대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별로 조금씩 다른 방식
화교 문화권에서는 도교나 불교식 절차에 따라 며칠간 웨이크를 진행하고, 불교식 웨이크는 보통 3일에서 7일간 이어지며 스님이 독경을 진행한다. 말레이 무슬림 커뮤니티는 훨씬 짧고 간소한 절차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다양한 방식이 같은 보이드덱이라는 공간에서 각 가정의 문화에 맞춰 유연하게 진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공감꿀벌 시선
이 풍경을 보면서 느낀 건, 보이드덱이라는 공간이 결국 삶의 시작과 끝을 모두 품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결혼식과 장례식이 같은 장소에서 번갈아 열린다는 게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웃 공동체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한다는 취지를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설계처럼 보입니다. 도시국가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공용 공간을 이렇게 다목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실용적이면서도 사람 중심적이라는 인상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