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COE, 차보다 비싼 이 종이
싱가포르에서 차를 사고 싶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냥 살 수가 없다. 자동차 자체보다 먼저 구해야 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바로 COE(Certificate of Entitlement), 차량 소유권 인증서다.
차를 몰기 위한 자격증, COE
COE는 말 그대로 자동차를 소유할 자격을 부여하는 인증서다. 차량 가격과는 완전히 별개로, 이 COE부터 확보해야 비로소 자동차 등록이 가능하다. 유효기간은 10년이고, 10년이 지나면 만료돼서 갱신 시점에 새로운 COE를 다시 취득해야 계속 차량을 운행할 수 있다.
가격은 경매로 결정된다
COE의 가장 독특한 점은 가격이 고정돼 있지 않고 경매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매달 두 차례 COE 경매를 진행하는데, 정부가 발급하는 수량은 정해져 있고, 그 한정된 수량을 두고 구매 희망자들이 입찰 경쟁을 벌인다. 그래서 같은 모델의 차라도 어느 달, 어느 회차에 COE를 낙찰받느냐에 따라 실제 부담하는 비용이 크게 달라진다.
차값보다 COE가 더 비쌀 때도 있다
COE는 차종에 따라 5개 카테고리(A, B, C, D, E)로 나뉜다. A는 배기량이나 출력이 낮은 소형차, B는 그보다 큰 중대형 차량, C는 상용차, E는 오픈 카테고리로 어떤 차종에도 쓸 수 있어 주로 고가 차량 구매자들이 몰린다. 최근 몇 년 사이 10년 만기 COE 가격은 소형차 기준으로도 10만 싱가포르달러를 넘어섰고, 중대형 차량은 15만 싱가포르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자동차 가격 자체보다 COE 값이 더 비싼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까지 비싸게 만들었을까
싱가포르는 국토가 서울 정도의 크기에 인구가 밀집한 도시국가다. 이런 환경에서 차량이 지금처럼 많아지면 교통 정체와 주차난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COE라는 총량 규제를 통해 국가 전체 차량 대수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COE가 비싼 이유는 단순히 세금을 걷으려는 게 아니라, 애초에 도로 위 차량 숫자 자체를 조절하려는 정책적 장치인 셈이다.
10년 뒤엔 다시 선택의 순간이 온다
COE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 차주는 몇 가지 선택지를 마주하게 된다. 갱신 비용을 다시 치르고 차량을 계속 운행하거나, 아니면 차량을 폐차하고 COE 권리를 반납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수년간 타던 애정이 담긴 차를 COE 만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폐차하는 경험담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싱가포르에서 차를 소유한다는 것이 단순한 구매를 넘어 주기적으로 갱신을 결정해야 하는 부담이라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대중교통이 답이 되는 나라
이런 이유로 싱가포르에서는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고도 불편함 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국토가 작아 도시 끝에서 끝까지 이동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 데다, 지하철과 버스망이 촘촘하게 갖춰져 있어서 굳이 값비싼 COE를 감수하며 차를 살 이유가 크지 않은 것이다.
공감꿀벌 시선
이 제도를 보면서 느낀 건, 싱가포르가 차량 문제를 규제로 억누르기보다 시장 가격이라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조절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제 생각에는 COE가 비싸다고 무조건 불합리한 제도로 보기보다는, 좁은 국토에서 교통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나름의 합리적 선택으로 이해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만큼 자동차 소유가 사치에 가까운 결정이 된다는 점에서, 싱가포르에서의 차량 구매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꽤 신중한 재정적 결정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