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B 복도 신발 벗어두는 문화
싱가포르 HDB 단지 복도를 걷다 보면 집집마다 현관 앞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문 안쪽이 아니라 복도 쪽, 그러니까 공용 공간에 신발을 벗어둔다는 게 처음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집 안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의 연장
이 문화의 뿌리는 간단하다. 다인종 국가인 싱가포르에는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문화(중국계, 말레이계, 인도계 모두 각자의 이유로 신발을 벗는 관습이 있다)가 자리 잡고 있고, 이걸 집 안이 아니라 문 밖 복도에서 미리 벗어두는 방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좁은 현관 공간을 신발로 어지럽히지 않고, 복도라는 공용 공간을 사실상 개인 공간의 연장처럼 쓰는 셈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
한국의 아파트 복도라면 이런 모습이 낯설 수 있지만, HDB 단지는 애초에 커뮤니티 중심으로 설계된 곳이 많다. 같은 층, 같은 동에 오래 거주하는 주민들끼리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 복도에 신발을 내놔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물건을 훔쳐 가거나 하는 일이 드물다는 사회 전반의 치안 수준도 이 문화가 유지되는 데 한몫한다.
실제로는 규정 위반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게 사실 타운카운슬(단지 관리 주체) 규정상으로는 공용 공간 무단 점유에 해당해서 엄밀히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재 시 대피 통로를 막을 수 있다는 안전 문제 때문에 종종 단속 안내문이 붙기도 한다. 그런데도 관습적으로 오랫동안 유지돼 온 데다, 실제로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어서 대체로 눈감아주는 분위기가 있다.
신발 정리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신발을 벗어두는 방식에도 은근한 규칙이 있다는 점이다. 대개는 문 앞 한쪽 구석에 나란히 정리해 두고, 신발장을 아예 복도에 설치해 두는 집도 많다. 방문객이 많은 명절이나 행사 때는 복도 한쪽이 온통 신발로 가득 차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공감꿀벌 시선
이 문화를 보면서 느낀 건, 결국 이것도 오랫동안 같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살아온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제 생각에는 복도라는 공용 공간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개인 생활의 일부로 확장해서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웃 간의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 같습니다. 다만 화재 안전 측면에서는 분명 딜레마가 있는 문화라, 편리함과 안전 사이에서 계속 미묘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